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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비평 2001년 3~4월호에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글. 김학규 사장이 직접 작성한 글이었다.

글의 원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http://web.archive.org/web/20010611143533/http://gravity.co.kr/afterarcturus.htm

이하 원문


김학규 (neolith@gravity.co.kr) 지음

먼저 이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게임비평에서의 자신이 만든 게임에 대한 후기를 쓴다는 것은 일반적인 게이머보다 더 비평적인 눈을 가진 여러 비평가에게 다시 한번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해서 저에겐 더욱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악튜러스가 완성되고 나서 좀 진지한 입장에서 게임에 대한 얘기들을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많은 대중언론들은 게임자체보다는 외적인 가쉽거리들에 관심을 보여준 것도 저에게는 매우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저희의 불찰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송구스럽기 그지 없고요. 한 회사의 대표가 되고 난후 어디에 글을 쓰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글을 쓰게 되는 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쓴 글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에 누를 끼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긴 합니다만, 기왕 게임비평에 글을 쓰는 바에는 좀 더 제작자 본연의 입장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써볼까 합니다. 비평에는 비평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있을테니까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 >>Edit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국내에는 아직 게임다운 게임이 없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게임을 만들어온 많은 제작자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외국게임과 비교하면 기본이 충실한 게임은 아직도 많지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현재상황을 둘러보아도 상황은 별로 나아진게 없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일러스트라던가 3d 동영상, 3d 엔진의 채용, 게임의 온라인화같은 외적인 면모를 추구하는 데에 비해 게임 자체의 재미를 잘 살려내는 제작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안타까움입니다. 세수도 안하는 사람이 화장만 배운 형상이라고나 할까요? 더 우려되는 점은 현재 한국시장에서 돈이 되고 있는 게임들은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외적인 측면이나 온라인상의 중독성만을 강조한 게임을 만들어 매출을 만들어내는 왜곡된 구조가 앞으로도 한국게임시장을 지배하는 기류를 형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악튜러스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었었던 것은 ‘그러한 기류에 맞서는 하나의 상징에 대해서’로서의 호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예전의 많은 명작게임들을 즐겨왔던 게이머들은 게임을 사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실행을 시키면서 그 안의 세계로 심취해들어갔던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가는 요즘의 게임시장에 불만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출만을 목적으로 만든 조제남조식의 비슷비슷한 온라인게임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제가 만들고 싶어했던 게임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첫 번째로 충분한 볼륨을 가진 스토리를 구현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나온 많은 국산게임들의 문제점중 하나가 플레이타임이 짧다라는 점이었습니다. 게임이 밀도가 높아서 플레이타임이 짧은게 아니라 내용 자체를 조금밖에 안 만들었기 때문에 짧은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했었죠. 한정된 수의 개발자가 PC 라는 드넓은 플랫폼에서 게임엔진까지만 만들어놓고 개발력을 모두 소진해버려서 막상 게임의 내용을 채워넣는 부분에서는 시간과 제한된 인력에 밀려서 결국 졸속하게 마무리되어버리는 상황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전철은 밟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듭된 발매연기도 그로 인한 것이었고요. 다행히 발매연기를 해서라도 완성도를 더 높인 것은 스스로 돌이켜보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발매연기를 할 때 버그운운한 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했고, 실은 내용을 더 충실하게 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늘어난 볼륨만큼 충실한 표현이 뒤따르지 못한 점은 단점으로 작용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래에 계속 언급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박진감있는 진행을 제공한다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스퀘어게임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박진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박진감이 떨어지는 만큼 화려한 그래픽이나 연출로 커버를 해주고는 있다지만 체질탓인지 그런 것은 한번보면 금새 질리곤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곧장 반응이 오기를 원합니다. 제노기어스같은 게임도 악튜러스를 제작할 때 참고를 하려고 인내심을 가지고 플레이를 해보려고 했지만 높은 인카운터률로 인한 흐름의 끊김과 어색한 전투의 표현 때문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노기어스도 그렇고 크로노크로스도 그렇고 전투를 턴방식으로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왜 적을 때려서 죽게 되면 플레이어가 적의 위치로 가서 적을 때리고나서 다시 플레이어가 제자리로 돌아간 다음에야 ‘우우웅’ 하면서 사라지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라면 플레이어가 적에게 가서 적을 때리는 그 순간 적이 펑하고 터지든 말든 했을 것입니다. 또한 마법을 사용하건 무슨 필살기를 사용하건간에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하는 것이 박진감을 해하지 않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미 그란디아에서 시도했던 것이기에 신선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말입니다. - 그리고 전투를 별도의 전투전용맵에서 처리하지 않고 플레이하던 그공간에서 치루어지게 한 것도 나름대로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에 있어서 캐릭터가 배경에 묻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문제라던가,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돌아가지 못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긴 했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게임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계속 무언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지루함을 덜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로딩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쓴 보람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요. 원래는 부가적으로 지형지물의 영향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서 적을 때려서 부서지는 상자같은 곳에 부딛히게 하면 상자가 깨지면서 추가적인 데미지가 생긴다던가 아니면 보기만이라도 시원해지는 느낌을 추가하는 개념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2 의 류의 스테이지에서 풍림화산 말판이 깨지는 것처럼)도 추가하고 싶었습니다만... 시간관계상 해내지 못한점이 아쉽습니다.

세 번째로는 세세한 표현과 묘사를 통한 캐릭터 성, 게임과의 일체감, 감정이입을 최대화한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악튜러스에 대해 칭찬해주신 부분중 하나가 캐릭터성이 양호하다라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점들에 대해 많이 배려했습니다. 다른 게임들을 보면 캐릭터를 그린 일러스트 하나가 뜨는게 캐릭터 연출의 전부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단순한 방법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도트그림을 그 상황에 맞게 더 많이 그리는 방법과, 프로그램적으로 캐릭터의 시점을 계산해서 분리해 표시하는 방법을 도입하였습니다. 사람이 옆을 돌아볼 때 몸이 머리와 같이 돌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눈이 먼저 돌아가고 그 다음이 고개가 돌아가고 그 다음 비로소 몸이 돌아갑니다. 악튜러스에서는 보통 걸어다닐때에도 방향을 바꾸면 즉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머리가 먼저 돌아가고 천천히 몸이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매크로 연출 (자동진행 이벤트)시에도 파티끼리 대화를 할 때에는 말하는 사람을 향해 다른 파티원들이 쳐다봅니다. 몸을 돌려야 하는 각도가 일정이내이면 몸은 그대로 있고 머리만 돌아봅니다. 각도가 그 이상이면 몸은 필요한만큼만 돌고 머리가 돌아보고요. 이런 방법등을 통해서 시즈나 마리아같은 캐릭터들을 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도록 시도하였습니다. 또한 악튜러스에서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라면 바로 매크로 연출부분입니다. 마치 연극을 프로듀스하는 기분으로 동시에 여러명의 캐릭터가 움직이며 대화를 하는 연출은 비록 플레이어의 자유를 뺏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게임 안에서 가장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스토리를 이해시킴과 동시에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해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매크로 씬이 총 500 개정도가 사용이 되었고 이부분을 제작하기 위해 별도로 구성된 연출팀이 1년이상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주제와 기획 의도 >>Edit

위에서 설명했던 것이 게임의 외형적인 부분에 대한 기획의도였다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기획의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악튜러스의 스토리에 대한 세평을 제가 들은 것들을 분류해본다면 ‘신과 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혁신적인 스토리’ 라는 호평도 있는가하면 ‘기존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 라는 평도 있었고 ‘스토리에 대한 충실한 설명이 아쉽다’ 라는 평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사항을 게임 그 자체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이런 식의 부연설명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아직 저와 저 희 스탭들의 역량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설명을 안하면 표현이 안될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본적인 게임내부에서의 세계를 보는, 종교를 보는 관점을 표현한다면 니힐리즘(nihilism) 이 저변에 깔려있는 세계관, 신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게임의 탈을 벗기고 보면 악마숭배사상이 깔려있는게 아니냐, 특정종교 모독이 담긴게 아니냐라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게임을 하다가 성경 인용한 동영상 나오는 부분에서 게임을 끄고 언인스톨해버렸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라비티 내부에 악마숭배사상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악튜러스의 기획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 가지 모티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악마의 속성과 창조와 피조의 재귀적 순환성, 그리고 심판의 정당성과 회피가능성의 3 가지 입니다.

악마의 속성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악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언제나 저에겐 흥미있게 다가온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악마의 의미를 설정하는데에 가장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악마적 존재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존재합니다만 그 악마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하는 것은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신이라는 절대성의 카테고리 밖에 있는 악마라는 존재가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한 최초의 악마인 뱀은 인간에게 원죄를 부여했습니다. 어느날 문득 저는 뱀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권하는 대목을 연상하면서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이라는 지혜의 빛을 전해준 죄과로서 영원히 돌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찍히고 있는 것처럼 뱀 역시 인간에게 선악과라는 지혜를 전해준 죄과로 어디선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독교적인 발상으로 본다면 프로메테우스야말로 악마중의 대악마로 생각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악마라는 것은 신의 변덕스러운 또하나의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되었습니다. 게임내에서는 편의상 조로아스터교의 형식을 빌어 기독교적 구성과 반기독교적 구성을 서로 엇갈리게 해서 배치했었습니다.

Arc after00

그러나 악튜러스에서는 사탄의 역할을 아후라 마즈다가, 신의 역할을 아흐리만이 맡게하여, 각각의 최고신을 숭배하는 두 종교를 등장시켜 서로 대립하게 하여 서로의 역할에 대해 주장하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악튜러스 자체를 악마주의적인 사상 내지는 반기독교적인 사상이 담긴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각각 창조자로써의 신과 악마였으며, 신이건 악마건간에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결국 나를 해하려하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나를 감싸주는 존재에게 손을 벌리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존재이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창조와 피조의 재귀적 순환성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말이 다소 복잡하게 되어있습니다만 그렇게 복잡한 개념은 아닙니다. 예전에 고등학교때쯤에 생각했던 소설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던 어떤 사람이 가상사회를 시뮬레이션해줄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가상의 지능을 가진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에 성공한다. 그 사람은 자신이 꾸며놓은 사회안에서 사람들끼리 번식하고 생각하고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만족해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경악하게 된다. 그 인공의 인간들은 그 안에서 다시 인공적인 인간들을 만들어내어 창조주로서의 행세를 하고 드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놀란 이유를 단다면 어떤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기 자신도 그런 식으로 창조되어버린, 창조자의 유희의 대상이겠구나라는 점을 깨달았을때의 놀람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개체들이 재귀적, 귀납적(recursive)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나는 누군가에 의한 피조물이고 그 피조물은 누군가를 창조할지도 모르고, 그 피조물은 또 다시 누군가를... 이라는 방향과, 나를 만든 창조주는 누군가에 의한 피조물이고 그 창조주의 창조주는 다시 누군가의 피조물이고.. 라는 방향이 있는데, 그러한 두 개의 방향은 서로 반대방향의 양극을 향하여 가는 것 같지만 어디선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는 점입니다. 흔히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사영평면기하학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에서는 두 개의 무한함의 방향이 한점으로 수렴하는 예를 도식화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창조와 피조의 상대성으로 도출되는 존재의 니힐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거창하게 했습니다만 게임에서는 내용이 개그에 묻혀서 의도했던바가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에 대해서입니다. 바로 위에서 창조주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접근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악튜러스의 테마를 한마디로 집약해서 말한다면 신이 자신이 창조한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피조물을 말살하려 할 때, 피조물은 악마에게 도움을 청해서 심판을 면할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정당한가, 부당한가라는 점입니다. 악튜러스에서는 그 선택을 게임안에서 강제적으로 고정을 했습니다만 (아후라마즈다의 힘으로 메시아를 물리치는 것으로 게임은 간단한 해피엔딩을 향하게 됩니다) 좀 더 여력이 있었더라면 여기에서도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분기를 도입하고 싶었습니다. 위에 신과 악마라는 것으로 단정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것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언급한바와 같습니다.

이러한 테마를 유저가 거부감없이 소화시키기 위해서 악튜러스라는 게임의 시나리오는 3 개의 파트로 나뉘어진 구성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1 장은 모험편, 2 장은 전쟁편, 3 장은 종교편으로 구성하여 지루함을 없애고 새로운 분위기와 각도에서 악튜러스의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승전결의 요소를 위해서 서장과 종장을 분리하게 되었고요. 악튜러스를 해본 사람들이 많이 비판하는 점은 3 장과 종장에서 무의미한 전투가 많고 너무 일방적인 진행이다라는 것이 많은데 저로서도 아쉬운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후반의 진행은 초반에 비해 핵심적인 내용이 책 형식의 아이템이나 도서관을 통해 전달되는, 유저들로 하여금 능동적인 진행을 다소 요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내용을 이해시키기에는 좋은 표현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짧은 진행중에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 했기 때문에 생긴 무리수인데 유저가 성전 아베스타가이아이론 등의 아이템을 찾아내어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이해했다면 어느정도는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에게는 초반과 같은 퀘스트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하지 않았던 것에 많은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반부분은 제대로 밸런싱 테스트를 할 기회도 없었고 데이터들도 나온 것만 이어넣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악튜러스가 영향받은 점들 >>Edit

악튜러스는 제가 만든 게임중 처음으로 제대로 어떤 기획의도라는 것을 가지고 만든 게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전에도 리크니스, 라스 더 원더러, 개미맨2, 스팅등의 게임들을 만들었지만 깊은 내용을 지닌 게임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 모든 것을 한 것은 아니고 많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완성이 가능했습니다. 시나리오 작성은 많은 부분을 그라비티의 기획실장 김세용 실장과 함께 상호 문답식으로 보충해나갔고, 실제 이벤트들이 유니트화되어나가는 과정은 거의 김세용실장과 그 휘하의 기획팀들이 공동으로 이루어낸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주로 담당한 것은 그러한 진행과정에 있어서의 중요한 가닥을 골라내고 팀원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기획의도에 대해 주지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완전한 저의 창작일 수 없으며 제가 지금까지 재미있게 즐겼던, 혹은 감명깊게 보았던,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저에게 영향을 준 요소들의 융합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악튜러스의 제작에 있어서 깊게 영향을 준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서 설명해볼까 합니다

1. 그란디아

그 자체로서 설명이 필요없는 명작 RPG이고 그란디아가 발매되기 전에 외지의 소개란을 통해 소개된 설정그림과 스크린 샷만으로도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게임이 앞으로의 중요한 RPG 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불행히도 그 생각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지만 (제작의 어려움과 온라인 RPG 라는 보다 쉬우면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란디아에서 영향받은 2 가지라면 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게임세계의 창조라는 한가지의 목표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조합된 전투시스템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악튜러스가 발매되면서 그란디아의 모방작이라는 논란도 PC 통신상에서 많이 오르내리고 했습니다만 게임비평같은 잡지에서 굳이 그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저에게는 울티마 6 과 더불어 가장 저에게 많은 느낌을 불어넣어주었던 게임입니다.

2. 에반게리온과 무라카미 하루키

그란디아가 게임의 구성이나 표현등의 외적인 요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게임의 내적인 요소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역시 에반게리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에반게리온 TV 판을 끝까지 보고나서 허탈감에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만.. (거의 몇분동안 말이 없이 계속 엘리베이터에서 침묵하고 있는 씬이라던가를 보면서 정말 돈 아끼는 방법도 여러 가지군..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흡입력의 존재에 대해서 새삼 감탄하게 되었고 최대한 에반게리온의 관념적 요소를 도입해야겠다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슷한 영향을 준 것이라면 유명작가 하루키씨의 소설들중 양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던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상의 끝 같은 역시 관념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소설들이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3. 개조 스트리트파이터

우리나라의 기묘한 복제문화의 부산물인 개조스파! 모르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대만에서 만든 것이라고도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볼때 게임역사상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던 전무후무한 창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조스파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점은 부조리함과 게임성의 만남이라는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나갔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공중에서 멈춰서 땅에 떨어지지도 않은채 장풍을 쏜다던가 하는 게임성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부조리함의 범주에 속하지만 게임적으로는 나름대로의 밸런스가 갖추어진 구성이라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처음 나온 개조스파는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아 일부 캐릭터만 선택하게 되었지만 그 후에 나온 개조스파들은 점진적인 밸런스 조정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성과 게임성의 만남’ 이라는 한 영역을 당당히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미술계에서 피카소가 개척한 신세계만큼이나 개조스파가 그 이후 게임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대하고 실제 그 후에 나온 격투게임들중 개조스파를 연상하게 하는 것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당장 그 후에 나온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츠바메가에시부터 보아도 공중장풍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그 이후부터 격투게임이 극단적인 폭열난투풍으로 급속히 발전해간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개조스파의 게임성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던 것은 격투게임의 전술게임화라는 점입니다. 켄으로 혼다를 상대할 때 먼저 느린장풍을 몇 개 쏴 놓고 점프한 상태에서 선풍각으로 적의 뒤로 넘어가게 되면 적의 뒤에서는 장풍이 느릿느릿날아오고 나는 적의 앞에서 다시 장풍이나 하단 강발등의 공격으로 적을 조여갈 수가 있습니다. 이때 뒤에서 날아오는 장풍은 마치 하나의 내 아군유니트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1:1 격투에서 다대다 전술전투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혁신적인 체험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튜러스에서도 착안한 점은 기존의 대부분의 RPG 가 ‘화이어볼’ 이라는 마법을 사용하면 시간이 멈춘채로 내가 적에게 마법으로 공격하는 표현이 된 다음에 넘어가는 식이었는데, 마치 개조스파의 느린장풍처럼 시즈가 느릿느릿 진행하는 화이어볼을 띄워놓고 마리아가 적을 공격해서 튕겨나간 적이 화이어볼에 맞으면 2 hit combo 가 되는 식의 구성을 생각한 것이지요. 비록 실제로 구현하는 단계에서 여러 가지 애초의 의도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만, 게임이 발매된 후 유저들이 파이어필라 5 개를 이용해서 적들을 불구덩이에 가둬놓고 마치 가스렌지 위에다 오징어를 구워먹는 듯이 1000 Hit Combo를 구현한 스크린샷을 자랑스럽게 인터넷상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제작진들이 매우 흐뭇해하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1000 hit combo 에 도전해보세요. 어떤 사람은 바제랄드 소환술까지 조합해서 2000 hit combo 까지 구현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4. 데스/블랙메탈

악튜러스라는 제목은 사실 동명의 노르웨이 출신의 블랙메탈 프로젝트 밴드 Arcturus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는 물론 그들의 열렬한 팬중 하나이고 그들의 2 집 앨범인 ‘La masquerade infernale' 는 국내에 라이센스로 발매되기도 하였습니다. 상당히 전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저처럼 듣고 좋아하실 분들이 몇분이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데스/블랙메탈음악을 접해들으면서 니힐리즘적인 사고의 기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악튜러스의 그림 풍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참고로 제가 요즘 제일 많이 듣는 그룹은 프랑스의 심포닉 5 인조 블랙메탈그룹 Anorexia nervosa 의 자칭 Nihilistic Orchestra, Drudenhaus 라는 앨범입니다.

악튜러스의 후반 연출은 Theatre of tragedy 의 A Hamlet for a slothful vassal 이라는 곡에서 전체적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표현되지 못했던 사항들 >>Edit

시간적인 문제와 기타 여러 가지 여건상인 문제로 인하여 악튜러스에서는 예정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다음은 기획실장인 김세용씨가 그라비티 홈페이지에 게재한바 있던 악튜러스의 뒷 이야기와 관련된 FAQ를 제가 첨삭한 것입니다.

Q 엔딩에서 시즈가 여자가 된 까닭은?Edit

A. Arcturus에서는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방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시즈에게 "여자처럼 생긴 남자"라는 설정을 부여한 까닭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대개 천사는 성별이 없는 무성인 존재로 묘사되곤 하는데, 시즈라는 캐릭터도 그러한 표현방식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었으며 게임 진행중 정신과 육체로 분리된 시즈가 엔딩에서 아후라 마즈다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즈를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려놓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남자모습의 시즈와, 여자모습의 시즈 둘중 어느것으로 되돌려야 하나 하고 고민했었는데 아후라 마즈다가 뱀과 여성을 합쳐놓은 형태로 표현되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시즈의 모습이 남성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화된 시즈의 모습을 남겨놓고 마무리를 한다면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내용을 전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 최종적으로 여성화 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사용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여성화된 시즈와 아이는 여자끼리인데 커플이 될 수 있는가?Edit

A. Arcturus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형태의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사랑 이외의 관계들에 대해 다루려고 했었습니다. 예로 인간과 인형의 사랑이라던지, 조물주와 피조물의 사랑 등이 등장하며, 그 외에도 초기설정상으로는 쉐라 플레어(시즈의 어머니로 나오는)를 남자로 표현하려 했었으나 우리나라의 정서상 맞지 않을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이후 인간이 된 시즈와 아이가 꼭 짝을 이루어 결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Q. 엔딩에서 셀린이 다시 방주에 스스로를 봉인하는 이유는?Edit

A. 엔딩의 대사중에도 나오듯, 셀린은 죽지않는 몸을 가졌으므로 시즈와 함께 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시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다. 이후 세상의 끝까지 홀로 살아남아 모든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이라던가, 고대에 자신이 사랑했던 엘리자베스까지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자책감까지 더해져 더이상 살아갈 자신을 잃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다시 방주로 돌아가 스스로를 봉인하게 된다는 내용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표현력의 한계로 잘 전달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외에도 악튜러스의 뒷 이야기를 만든다면 셀린을 중심으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예비해 두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Q. 3장의 정신세계에 등장하는 "관념의 꽃"은 무슨 의미인가?Edit

A. 그것은 초기 기획에서는 아이템화 하려고 했었으나 그 효능을 대체할 다른 아이템이 나왔기 때문에 아이템에서는 삭제한 부분입니다. 그 꽃은 셀린의 마음속에 무의식중에 품고 있는 과거의 미련에 대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고, 아이가 셀린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그 꽃을 꺾어버린 것은 미래(엔딩)의 일을 암시한 것입니다. 역시 잘 전달되지 않았던 부분이라 제작진에서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Q. 게임에는 왜 성우가 등장하지 않는가?Edit

A. 실제로 비용을 들여서 스튜디오에서 성우를 섭외해서 녹음을 했었습니다. 대상은 주요 이벤트부분의 음성처리, 전투시의 음성 등 텍스트량이 많았기 때문에 녹음량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마스터링을 앞두고 2차 녹음을 했었습니다. 역시 게임에 삽입해 놓고 보니 오히려 유저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판단되어 결국 최종적으로 삽입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 현재로서는 개발자 내부용 유머자료로서만 쓰이고 있습니다.

Q. 그라비티와 손노리가 작업을 분담한 사항은?Edit

A. 처음 시작을 할 때에는 그라비티가 시나리오와 프로그래밍, 시스템 기획등을 하고 손노리가 그래픽과 홍보등의 외적인 업무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10 명이서 만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난 후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중에 총 인원이 40 명이 넘게 되어버리면서 서로가 다른 부분까지 많이 손대게 되었습니다. 단, 게임 내의 텍스트는 전부 그라비티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손노리 특유의 유머라던가 손노리 테이스트... 라는 말을 보면 입맛이 좀 씁니다)

마지막으로, 참고삼아 저희 회사의 한 스탭이 사내 워크샵에서 악튜러스라는 게임에 대한 게이머로서의 평가를 써 놓은 것을 옮겨보겠습니다.

"발매후 테스트플레이 하면서 느낀 소감은 사소한 부분들에 대한 완성도가 낮으며,
전체 진행을 놓고보면 게임의 밀도가 낮으며, 완성도에 비해 많은 것을 담으려 했으며,
그 빈 부분들을 저속한 유머로 채우려 했음. 한마디로 '미완성작품'"

앞으로의 길 >>Edit

물론 좀 더 완성도 있게 잘 만들어야겠고.. 지금은 라그나로크라는 온라인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실컷 위에서 온라인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써놓고 무슨 소리냐.. 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만큼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다시 싱글플레이용 패키지 RPG 도 개인적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악튜러스의 대주제가 종교였다면, 이번에는 문화라는 것을 대주제로 하여 뭔가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문화탐사겸 남미 안데스쪽을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이상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보기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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